나의 고향은 진강산과 덕정 산으로 둘러싸인 강화도 산골 마을 이다 .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던 관계로 젖을 못 먹고 자라 
또래 아이들 보다 작았다 .그래도 인사 잘하고 뜀박질 잘하고 똘똘하다는 
소리는 듣고 자랐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 땅이 풀리기 시작하면 뒷산에 올라
알이 통통하게 오른 칡뿌리를 먼저 캐 먹기 시작하였다.

친구들과 잡아당기다 끊어 졌을 때는 무척이나 아깝고 속상하였다.

봄바람이 불면 둥근 파 꽃에 벌과 나비가 제일 먼저 날아들었다.
그 당시 나는 하얀 고무신을 신었는데 (타이어로 만든 검정고무신을 신은 아이들도 많았다.)
그걸로 벌을 낚아채 뱅뱅 돌리다 힘껏 땅에 팽겨 치면 벌은 충격을 받아 
부르르 떨며 고무신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잽싸게 벌침을 제거하고 달려 나온 
소량의 꿀을 빨아 먹었다.

개미의 뒤끝도 마찬가지로 혀를 개미 꽁무니에 대면 톡 쏘았다 .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평소 봐둔 돌 틈을 뒤져 연한 싱아를 캐먹고 조금 지나면 
진달래꽃과 찔레를 꺾어 먹었다.

형 누나들은 어린 소나무 목을 베어 껍질로 껌을 만든다고 난리였다.

풀 꼴에 끼어 먹는 감꽃의 맛은 또한 일품이었다.

월요일이 되어 학교에 가보니 교실 안이 평소보다 들떠 있었다.
특히 나머지공부를 도맡아 하는 코방구리랑 싸움대장 돌이는 더 신이 나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오학년 여학생 때문이었다.

양쪽 머리를 곱게 땋고 빨간 스펀지 리본을 단 그녀의 모습은 당시 참고서인 동아전과의

표지 모델보다 더 예쁘고 싸리 꽃보다 더 하얀 피부를 가진 애가 우리 육학년 옆 반으로

전학을 온 것이다. 
조회시간에 그 애 곁에 서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는데 애들의 놀림 때문이었다 .
학교 화장실벽에 "엘 레리 꼴 레리 누가 누구를 좋아 한대요~"라는 낙서와 함께 
소문이 나면 정말 큰일 이었다 .

당시 아버지가 선생님으로 계신 덕인지 나는 반장을 자주 할 수 있었다.

담임선생님 대신 나머지 공부 감독을 하던 나는 용기를 내어 코방구리에게 
넌지시 물었다.

수업시간에 찐 고구마를 먹었다는 것을 담임선생님에게 이르지 않기로 약속하고
그녀에 관해 물었더니 이름은 선영이고 아버지가 해병대 중령으로 월남전에 참전하셔서
시골 외할머니 댁으로 이사 온 사실과 그녀와 친하다는 등 많은 사실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때부터 코방구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담임선생님 몰래 한두 번 나머지 공부를 빼준 적이 있다. 
물론 화장실 청소까지 말이다. 
당시 반장의 권한은 떠든 아이 이름 적어 칠판에 적어 놓거나 담임선생님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등 정말 어깨가 으쓱 하였다. 
어쩌다 복도에서 선영 이와 마주치며는 가슴이 쿵쾅거려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 당시 나는 서울 생활을 무척 동경하였다 . 수학여행 시 서울 가서 두리번거리면 
촌놈 소리 듣고 길을 잃으면 앵벌이로 팔려간다는 말에 인솔 교사의 뒤 만 따라 다니다가 
창경원에 가서 기린과 공작새만 보고 나온 순진한 아이였다. (그래도 두 명은 길을 잃음)
남산의 케이블카, KBS 방송국, 리라초교의 온통 노란 교복, 학교, 스쿨버스, 높은 빌딩,
쌩쌩 달리는 자동차는 신기하였다.그에 반해 어머니는 돈 아낀다고 나의 머리를 
상구머리로 깎아 주셨다. 그 촌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바리캉이 
무뎌 머리를 집을 때 그 고통이란 장난이 아니었다.

아프다고 칭얼대면 금세 어머니는 복창을 들어 얹으셨다. 가만히 좀 있으라고 …….

옷은 만날 형이 물려준 무릎이 쑥쑥 나오는 고리댄 바지가 전부다 .  운동회 때 입던 검정색
팬티는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셨는데 다리통을 넓게 만들어서 쪼그리고 앉으면
밑천이 그대로 다 들어나 여학생들의 놀림감이 되곤 하였다.
어느 날 총채를 들고 책상 위를 뛰어 다니다가 한 여학생이 문제의 운동팬티를 
잡아 내리키는 바람에 애고  그날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동상이 될 뻔했다 .

이곳 생활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동화나라의 공주님이바로 옆 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녀와 미술반에서 
자주 만나게 되면서 친해지기 시작하였다.  
사생대회도 같이 나가고 학예발표회 합창연습곡 "초록빛 바다" 라는 노래도 같이 하였으며
연습이 끝나면 아이들 몰래 들판에 나가 보리피리도 만들어 주고 토끼풀 꽃으로 손목시계도
만들어 주었다 .
우린  헤어지지 않을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 앞에서 호기를 부린다고 되새김질 하던 소잔등에 올